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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2013 / Sanghwan A. Lee

성경이 증거하는 세 종류의 사랑에 담겨있는 신학적 의미

세 종류의 사랑:  “사랑”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세 개의 다른 단어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아가페, (2) 필리아, (3) 에로스.

아가페(ἀγάπη)는 신약 성경에 명사형으로 110번, 동사형으로 106번, 형용사형으로 60번 사용되고,
필리아(φιλία)는 신약 성경에 명사형으로 1번, 동사형으로 21번 사용되며,
에로스(ἔρως)는 LXX에 명사형으로 2번 사용됩니다.

 

세 사랑의 특성: 이 세 종류의 사랑이 문맥 속에서 쓰이는 사용법을 면밀히 고찰하여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특성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일방적으로 시작하신 신적 사랑이고,
필리아 사랑은 성(性) 차별없이 인간에게 허락된 사랑인지라 이성(異性)과 동성(同姓)사이에서 우정으로 나타나는 벗(友)의 사랑이며,
에로스 사랑은 이성(異性)간에만 허락된 성(性)적 사랑이지요.

우리가 이러한 사실에 의거하여 발견할 수 있는 신학적 진리가 있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불변하시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사랑인지라 그 무엇도 그 사랑에서 인간을 끊을 수 없고,
필리아 사랑은 성차별없이 주어진 사랑인자라 남녀를 막론하고 우애(友愛)를 가져야 하며,
에로스 사랑은 이성에게만 허락된 사랑인지라 동성 연애나 동성 결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 사랑의 교집합:  사랑을 나타내는 세 단어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포함하는 교집합도 존재하는데 그것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집합

 

아가페 ∩ 필리아: 아가페와 필리아 사랑의 교집합은 성에 관계없이 동성과 이성 사이에 오가는 불변의 사랑으로써 성도(聖徒)와 성도(聖徒) 사이에 있어야 하는 끝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성도를 향하여 필리아적 사랑만 가져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필리아적 사랑만 나누는 교인들은 사교(社交)적 관계는 가질 수 있지만 예수님의 사랑으로 엮어진 끈끈한 성도의 관계는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서로를 향해 필리아 사랑은 물론 아가페 사랑까지 나눔으로써 예수님의 보혈로 엮어진 깊은 관계까지 맺기를 소원하십니다.

필리아 ∩ 에로스: 필리아와 에로스 사랑의 교집합은 이성 사이에서만 오가는 우정의 사랑으로써 부부 사이에서 성적 사랑 외(外)에 갖추어야 하는 친밀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부부는 에로스의 사랑으로써만 서로를 사랑하면 안됩니다.  반드시 친밀한 친구의 관계를 형성하여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야 합니다.  많은 부부들이 필리아의 사랑을 등안시 하고 에로스의 사랑만 추구하기 때문에 불륜(不倫)등의 죄를 범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배우자의 관계 속에서 에로스의 사랑은 물론 필리아의 사랑까지 나눔으로써 서로를 향해 절친하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가페 ∩ 에로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아가페와 에로스 사랑에는 교집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성(性)적으로 사랑할 수 없고, 인간도 하나님을 성(性)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시는 성경의 하나님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확연히 다른 하나님으로 밝힙니다.  육감적인 여자와 성적 관계를 맺기 위해 동물이나 인간으로 변하는 제우스는 인간과 에로스의 사랑을 나누는 변태적 신이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을 결단코 하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마리아와 성적 결합을 하심으로 예수를 낳았다”는 이단들의 주장과 피가름 설을 통해 구원이 임한다는 이단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천명합니다.  성경은 아가페와 에로스 사랑에는 교집합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실히 계시하는 고로 두 사랑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교집합을 억지로 만들어 피가름 설 따위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로 강등시키는 죄악인 것입니다.

 

세 사랑의 근원:  성경의 증언에 따르면 아가페, 필리아, 에로스 사랑이 누구로 부터 왔는가도 알 수 있습니다.

 근원

 

보시다시피 세 사랑은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시작하신 사랑인지라 거룩합니다.
필리아 사랑도 하나님께서 동성, 이성에게 허락하신 사랑인지라 거룩합니다.
에로스 사랑도 하나님께서 이성 부부에게 허락하신 사랑인지라 거룩합니다.

세 사랑의 발원지가 거룩하신 하나님인고로 다 거룩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실에 의거하여 제가 잠시 밝히고자 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에로스 사랑입니다.  한국인들은 성에 대해 상당히 폐쇄되어 있는지라 에로스 사랑을 더러운 것, 추접한 것,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관계를 통하여 결실을 맺는 부부간의 사랑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부에게만 주신 특별한 선물이니까요.  이러한 고귀한 사랑이 더러워지고 추해지는 때는 부부관계를 벗어날 때 입니다.

제가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성(性)은 불과 같습니다.  이 불이 부부관계라는 난로 안에 있을 때에는 온 집안을 따듯하게 합니다.  그러나 난로 밖으로 나오는 순간 온 집안을 태우게 되지요.  이와 같은 에로스 사랑의 특성을 가장 적절히 묘사한 구절이 있습니다.  잠언 7장 입니다.

잠 7:18을 보면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만나는 남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요.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이 구절에 “사랑”이라고 표현된 헬라어(LXX)는 에로스입니다.  기생 여인은 부부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에로스 사랑을 부부관계 밖에서 즐기자고 유혹했던 것입니다.  젊은이는 결국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 여인을 따라 갑니다.  그 결과가 어땠을까요?  그는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이 음녀를 따라가 결국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게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대저 음녀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녀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는 말씀을 통하여 젊은이의 안타까운 최후를 고하지요.

이것이 부부관계 밖에서 이루어지는 에로스 사랑의 결과입니다.  에로스 사랑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거룩한 사랑인지라 반드시 거룩한 부부 사이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거룩한 사랑인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아가페와 필리아는 여러 사람들에게 주면 줄 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에로스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줘야 합니다.  그 사랑을 아무에게나 주지 마세요.  하나님 앞에서 백년해로(百年偕老)의 언약을 맺은 한 사람에게만 주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이 따뜻해질 것입니다.

 

글을 맺으며: 정리해 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사랑은 세 종류입니다: (1) 아가페, (2) 필리아, (3) 에로스.

아가페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일방적으로 시작하신 무조건 적인 사랑으로써 죽음도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필리아는 하나님께서 성에 관계없이 이성과 동성에게 허락하신 사랑으로써 우정의 결정체와 같은 사랑입니다.
에로스는 하나님께서 이성에게만 허락하신 사랑으로써 부부의 언약을 통하여 시작되는 비밀스런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특성을 기억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귀한 사랑들이 우리의 삶에 바르게 역사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페이스 북: https://www.facebook.com/sanghwa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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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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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vid / 7월 21 2015 11:28 오후

    너무 짜 맞춘 느낌이 드는데 연구를 좀 더 하셔야 겠네요. 아가파오/아가페 와 필레오/필리아는 동의어로 교환되어 사용되고 있고 또 semantic range 가 broad 하기에 심지어 에로스와 overlap 되기 까지 합니다. James Barr의 The Semantics of Biblical Language 와 DA Carson의 Exegetical Fallacies 를 꼭 읽어보세요.

    좋아요

    • Sanghwan A. Lee / 7월 22 2015 7:52 오전

      네, 감사합니다.

      1. “아가파오/아가페 와 필레오/필리아는 동의어로 교환되어 사용되고 있고”라고 말씀 하셨는데 동의어로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제가 위의 도표에 보기쉽게 그려놨듯이 공통적으로 쓰이는 부분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요.

      2. “semantic range 가 broad 하기에 심지어 에로스와 overlap 되기 까지”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에로스와 아가페가 오버랩 되는 부분은 없지요.

      3. James Barr가 제한한 시간 프래임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부분도 고려하시고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제임스 바의 어떤 부분과 본글이 상치하는지도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DA Carson의 Exegetical Fallacies를 무조건 신뢰하지 마세요. 언어학적으로 논리적 오류가 많이 있습니다. 알빈 플랜팅가의 제자 더글라스 블런트 교수(달라스 신학교)는 카슨의 책을 교제로 “이런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지 말아라”는 수업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역시 카슨의 어떤 부분이 본글과 상치하는지도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요

      • David / 7월 23 2015 11:23 오전

        흠…facebook 을 보니 달라스 신학원에서 공부하시나요? 세 단어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것이 맞는지 (20년+에 나온 주장) 그리고 그 아가페가 과연 에로스와도 오버랩이 되는지 Darrell Bock 교수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Dan Wallace 교수에게는 후자에 대해 물어 보시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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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ghwan A. Lee / 7월 23 2015 6:33 오후

        감사합니다. David님께서는 저와 다른 관점으로 성서의 언어를 대하시는 것을 알 수 있겠네요. 성경에 쓰인 몇몇의 특수 언어 (e.g., 사랑, 거룩, 복음)등은 신학적 사유에 근거하여 기표화 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신학적 의미와 별거시킨 후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지요. 필로가 범한 치명적인 오류가 이를 간과했다는 것 아닙니까? 저는 성서에 쓰인 특수 언어들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고 사용되었는지를 성서를 통해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 Darrell Bock 교수님의 책(The Bible Knowledge Word Study)이 제게 있더군요. “사랑”이란 언어분석이 있는지 찾아보니 435 페이지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agape와 eros를 비교하여 둘의 비동일성에 대해서 논한 후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더군요. 둘을 비교한 전문을 이곳에 발췌해 놓겠습니다.

        “This noun (Agapen) is not found in classical literature. It appears only 19 times in the LXX (15 times in the canonical books), 116 times in the NT, 75 times in Paul’s writings, and 10 of those in Ephesians. By comparison, another word for love (eros) occurs 3 times in the OT (Ps. 35:11 [34:11 LXX]; Prov. 7:18; 30:16), but never in the NT. It expresses a possessive love, mainly used of physical love. Morris states that “eros has two principal characteristics: it is a love that desires to possess. Agape is in contrast at both points: it is not a love of the worthy, and it is not a love that desires to possess. On the contrary, it is a love given quite irrespective of merit, and it is a love that seeks to give”. Hence, the highest concept of love is based on God’s love in that he extends it to the underserving and unloving demonstrated by his continuing love for the sinner an the believer alike. [agape, eros]”

        끝으로 신학을 하시는 분 같으니 제가 한 가지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논쟁을 하기 위해서는 논쟁의 근거들을 준비하신 후에 참여하셔야 합니다. 위의 댓글처럼 “~에게 물어보라”는 식의 발언은 논쟁을 진취적으로 인도하지 않지요.

        귀한 시간을 내셔서 댓글을 달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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