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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2013 / Sanghwan A. Lee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5) – 요 1:1의 빛 아래에서…

진리의 펜 (글)문제 제기: 요한복음 1:1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가장 중요한 구절중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물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아름답게 증거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구절은 기독교 신학자들만 좋아하는게 아닙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예수님의 신성을 강등, 부인하고자 하는 이단들도 좋아합니다.  기독교 신학자들과 다르게 이 구절을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신기하지요?  어떻게 같은 구절을 가지고 이처럼 판이한 해석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방향 설정: 두 개의 논증이 서로 충돌될 때 가장 먼저 봐야 하는 것은 논증의 타당성입니다.  논증의 타당성은 크게 (1) 논증을 위하여 사용된 전제가 사실인지와 (2) 논증을 만들어가는 논리가 건전한가로 검증됩니다.  이 두 개의 틀을 통과하지 못하면 논증은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 둘 중에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첫 번째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논증을 이루는 논리가 건전하다 할지라도 논증을 위하여 사용된 전제가 거짓이면 그 논증은 힘을 잃기 때문이지요.  정통과 이단이 요 1:1을 기반으로 만드는 논증들의 논리를 비교하면 둘 다 건전합니다.  그러나 논증을 위하여 사용한 전제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바로 거기에서 전혀 다른 해석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지요.

제가 지금부터 할 것은 이것입니다.  우선 헬라어의 특성을 말씀 드린 후 기독교도들과 이단교도들이 공통 분모로 사용한 요 1:1을 문법적으로 분석할 것입니다.  그리고 분석된 문법으로 문장을 해석할 것입니다.  그 후에는 그 해석이 만들어내는 바를 신학화 할 것입니다.  그 후에 두 논증의 타당성을 검증하도록 하겠습니다.

 

헬라어의 두 가지 특성: 헬라어의 특성중 하나는 관사의 사용법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는 우리가 관사를 아예 붙이지 않거나 잘 붙이지 않는 단어 앞에도 관사를 붙일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추상 명사나 고유 명사 등에도 관사를 붙일 때가 있지요.  그 이유는 문장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헬라어의 특성 때문입니다.

헬라어의 두 번째 특성은 문장구조가 아주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주어와 동사와 형용사의 순서가 특정한 틀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앞뒤로 놓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장구조는 헬라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특별한 문장 사용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강조하고자 하는 단어를 문장의 가장 앞에 둠으로써 그들이 강조하고자 했던 바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쉽게 말해서 문장 속에 있는 동사를 강조하고 싶으면 동사를 앞에 둡니다.  형용사를 강조하고 싶다면 형용사를 앞에 둡니다.  명사를 강조하고 싶다면 명사를 앞에 둡니다.  그럼으로 읽는 자에게 자신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밝히 명시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두 가지 차이점: 이러한 사실을 마음에 두고 요 1:1로 가봅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구절을 헬라어에서 직역해 보겠습니다.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태초에 그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이 그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하나님은 그 말씀이시니라”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헬라어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앞에 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 성경은 관사를 생략하고 번역했습니다.  추상명사 앞에는 관사를 잘 붙이지 않으려고 하는 한국어 특성상 생략한 것입니다.  그러나 헬라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 말씀드렸다시피, 헬라어는 우리가 관사를 아예 붙이지 않거나 잘 붙이지 않는 단어 앞에도 관사를 붙일때가 있습니다.  문장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헬라어의 특성 때문이지요.  요 1:1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요 1:1를 통하여 전달하고 자는 의미를 관사의 사용법을 통하여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전달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제가 직역한 요 1:1을 다시 보세요.  특이한 점 하나가 발견될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단어에는 다 관사가 붙어있지만 “하나님”이라는 단어에는 관사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태초에 그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이 그 하나님(관사있음)과 함께 계셨으니 하나님(관사없음)은 그 말씀이시니라”

 

이는 의도적입니다.  사도 요한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하여 한 단어 앞에는 관사를 붙였고, 또 다른 단어 앞에는 관사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관사 사용법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뭘까요?  요 1:1을 천천히 분해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볼까요?

 

요 1:1a – “태초에 그 말씀이 계시니라”
여기에 있는 “그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요 1:1b – “그 말씀이 그 하나님(관사 있음)과 함께 계셨으니”
여기에 있는 “그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그 하나님”은 성부를 가리킵니다.

요 1:1c – “그 말씀은 하나님(관사 없음)이시니라”
여기에 있는 “하나님”은 존재로써의 하나님이고, 그 말씀은 예수님입니다.

 

지금부터 중요합니다.  만약 요 1:1 c에 있는 “하나님”에 관사가 붙었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석이 될까요?  요 1:1c에 있는 “하나님”이 1b에 있는 “하나님”과 동격이 되어 성부가 곧 예수님이요, 예수님이 곧 성부라는 뜻이 되겠지요?  이는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일체의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성부와 예수님은 한 하나님이지마, 같은 위(位)가 아닙니다.  성부는 하나님이시지만 성자가 아닙니다.  성자는 하나님이시지만 성부가 아니십니다.  성부와 성자는 같은 하나님이지만 서로 다른 위(位)를 소유하신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이지요.  아래의 도표를 보세요.

 

삼위일체

 

이해가 되시지요?  요 1:1b에 관사가 있는 “하나님”은 삼각형 윗 부분에 있는 성부를 가리키고, 1c에 관사가 없는 “하나님”는 삼각형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피력하기 위하여 첫 번째 등장하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에는 관사를 붙였고, 두 번째 단어에는 관사를 붙이지 않은 것이지요.  사도 요한이 헬라어를 얼마나 예리하게 사용했는지 여실히 보이는 구절입니다.

 

둘째, 한국어 성경은 요 1:1c가 “이 말씀”이 서두에 나오지만 헬라어 성경은 “하나님”이 서두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비교해 볼까요?

한국어 성경: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헬라어 성경: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한국어 성경에는 “이 말씀”이 문장의 서두에 나오고 “하나님”이 후두에 나옵니다.  그러나 헬라어를 보면 그 반대로 되어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요 1:1 c의 주어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 말씀”입니다.  “말씀” 앞에 주격 정관사(ὁ)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한국어로 번역하는 자들이 주어를 문장 앞으로 보내기를 좋아하는 한국어 특성을 따라 “이 말씀”을 문장 앞으로 보내어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도 요한이 주격 정관사가 붙은 “그 말씀”을 문장의 서두에 두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서두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헬라어 문장구조는 주어와 동사와 형용사의 순서가 특정한 틀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앞뒤로 놓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문장을 만드는 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한 말을 기억하시지요?  요 1:1c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요한은 문장의 주어인 “그 말씀”을 뒤로 놓고, “하나님”을 앞에다가 두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어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했고, 만나고 싶어했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관사 없는 “하나님”을 문장의 제일 앞에 배치한 것입니다.

 

퍼즐 맞추기: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여 요 1:1이 담고 있는 뜻을 풀어 신학화 해봅시다.

  1.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는 다른 위(位)를 갖고 계십니다.
  2. 다른 위(位)를 갖고 계신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습니다.
  3.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은 다른 위(位)로써 영원 전부터 함께 존재하셨습니다.
  4.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은 다른 위(位)를 갖고 계시지만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5.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 이단들의 논증을 검증해 봅시다.

 

이단들의 논증 타당성 검증하기: 요 1:1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등시키려는 대표적 이단들인 사벨리우스 주의자, 아리우스 주의자, 여호와의 증인들, 그리고 몰몬교도들의 주장을 상쇄합니다.

시벨리우스 주의자: 사벨리우스 주의자들은 한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변한다고 주장한 자들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창조에는 성부로 일하시고, 구속에서는 성자로 일하시며, 성화에는 성령으로 일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지탱하는 전제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고, 또한 요 1:1은 이러한 주장을 철저히 배격까지 합니다.  만약 사벨리우스의 주장이 맞았다면 요 1:1c는 “ὁ λόγος ἦν ὁ θεὸς, 그 말씀은 그 하나님이시니라”고 기록되었겠지요.  그러나 요 1:1c는 확실하게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하나님은 그 말씀이시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아리우스 주의자와 여호와의 증인들: 아리우스 주의자들은 예수님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단지 성부에게 종속된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이 피조된 천사급의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역시 이들의 주장을 지탱하는 전제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이들의 주장이 맞다면 요 1:1a는 “μετά ἀρχὴν ἦν ὁ λόγος, 태초 후에 그 말씀이 계시기 시작하시니라(기동의 미완료)”고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 1:1 a는 확실하게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태초에 그 말씀이 계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몰몬교도들: 몰몬교도들은 예수님이 여러 하나님 중에 하나이고 인간들도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이 만들어진 전제는 요 1:1c에 있는 “하나님”이라는 단어 앞에 관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헬라어의 관사 사용법도 모르고, 사도 요한의 의도도 모르며, 구절을 문맥으로 보지 않고 따로 떼어서 보는 무지때문입니다.  만약 이들의 주장대로 관사가 붙어있다면 성부는 곧 성자요, 성자는 곧 성부라는 시벨리우스적 해석이 나오게 되지요.  게다가 몰몬교도들의 주장대로 “인간들이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이 될 수 있다”면  요 1:1c는 “ὁ λόγος ἦν θεὸς, 그 말씀은 하나님들 중에 하나이다”라고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 1:1c는 확실하게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태초에 그 말씀이 계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논증 타당성 검증하기: 기독교의 논증은 특별히 검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위에서 문법적으로 설명했던 모든 부분들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결론: 기독교는 거짓위에 세워진 종교가 아닙니다.  사실위에 세워진 진리입니다.  2,0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온갖 이단들이 강력한 논증을 가지고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도전했지만, 기독교는 엄동설한에도 우뚝 서있는 일송정처럼 그 자리를 사수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빛을 삼킬 수 없고, 거짓이 진리를 숨길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태초에 그 말씀이 계시니라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그 말씀이 그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는 구절이 시퍼렇게 살이있는 이상, 예수님의 신성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논증은 절대 없습니다.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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