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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2013 / Sanghwan A. Lee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3) – θεὸς만 하나님을 지칭하는가?

문제 제기: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중 하나는 예수님을 떼오스(θεὸς-헬라어로 “하나님”)으로 지칭하는 표현이 신약 성경에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부만이 떼오스로 지칭되기에 단일신론을 주장하는 것이지요. 아주 강력한 논증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모순 전제의 오류: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모순 전제의 오류(Contradictory Premises)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순 전제의 오류란 잘못된 전제위에 논증을 세우는 오류로써 다음과 같은 예가 있습니다.

  • 전제 1: 존재하는 것은 죽게 마련이다
  • 전제 2: 신은 죽지 않는다
  • 결론: 고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논증이 잘못됐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논증에 사용된 전제 1이 모순이기 때문에 결론도 모순이 나온 것이지요. 여호와의 증인들의 논증도 이와 같습니다. 한 번 볼까요?

  • 전제 1: 헬라어 성경에서 하나님은 떼오스로만 지칭된다
  • 전제 2: 예수는 떼오스로 지칭되지 않는다
  • 결론: 고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 논증은 잘못됐습니다. 전제 1이 모순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전제 2도 모순입니다. 자세한 설명을 원하시면 제가 이전에 쓴 글인 ‘예수님의 신성 1편을 보세요 [1]) 그래서 잘못된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전제 1이 모순일까요? 지금부터 그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지칭하는 단어들: 헬라어 성경은 크게 두 개의 단어들로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단어들이 (1) 떼오스(θεὸς)와 (2) 큐리오스(κύριος)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유대인들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사용법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헬라어판 구약성경인 셉투아진타에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히브리어 엘로힘(אלהים)이 헬라어의 떼오스(θεὸς)로, 여호와를 지칭하는 히브리어 야훼(יהוה)가 헬라어의 큐리오스(κύριος)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떼오스(θεὸς)는 구약 히브리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존함인 엘로힘(אלהים)을 헬라어화 한 것이고, 큐리오스(κύριος)는 야훼(יהוה)를 헬라어화 한 것이지요. 이게 무슨 뜻이지요? 유대인들은 떼오스뿐 아니라 큐리어스까지도 하나님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언어사용법 속에서 신약 성경이 지필된 것이지요.

 

큐리오스가 사용된 사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신약 성경을 조명해 봅시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구약 성경과 대비시키면서 증거하는 부분이 많이 있는데요, 우선 막 1:1~3을 봅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침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이 구절은 침례 요한이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회개의 침례를 베푸는 모습을 사 40:3을 인용하며 설명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사 40:3에 등장하는 “주”의 길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가 여호와를 지칭하는데 사용된 야훼(יהוה)라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이 야훼(יהוה)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그가 준비한 그 길을 밟고 오셨다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지요? 예수님께서 사 40:3에 묘사된 야훼(יהוה)와 동일 인물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지요!

베드로의 설교가 기록되어있는 행 2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욜 2:32에 있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구절을 예수님의 이름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주”로 번역된 히브리어도 여호와를 지칭하는데 사용된 야훼(יהוה)입니다. 베드로는 또한 시 16:3에 등장하는 다윗의 “주”를 예수님과 연결시켜 설교하지요? 여기에 “주”로 번역된 히브리어도 여호와를 지칭하는데 사용된 야훼(יהוה)입니다. 계속 찾아서 보여드릴 수 있지만 제가 피력하고자 하는 논지가 충분히 들어난 것 같아서 여기에서 멈추겠습니다. 이처럼 여호와를 지칭하는데 사용된 야훼(יהוה)가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의 특별한 호칭인 큐리오스(κύριος)로 대치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이신 당신을 보다 뚜렷히 구분하여 보여주시기 위해서 성부 하나님은 떼오스로, 성자 하나님은 큐리어스로, 성령 하나님은 프뉴마로 표기하신 것입니다.

이를 조직신학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떼오스는 (a) 지칭적 떼오스와 (b) 존재적 떼오스로 나뉘는데, (a) 지칭적 떼오스로 쓰일 때에는 큐리어스이신 성자 하나님과는 다른 성부 하나님을 나타내는데 쓰이고, (b) 존재적 떼오스로 쓰일 때에는 성부, 성자, 성령을 의미하는데 쓰이는 것이지요.

 

끝으로: 논리학에서 논증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경우가 몇 됩니다. 그 중에 하나는 논증의 전제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이 거짓일 때입니다. 어떤 논증이 형식적으로 아무리 타당하다 할지라도 거짓된 전제가 있다면 그 논증은 불건전하다고 여겨저 거부되는 것이지요. 여호와의 증인들의 논증이 이런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바로압시다.

성경의 확실한 증언에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Κύριος Ἰησοῦς)!

 

 
[1]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1) – 로마서 9:5 문법적, 구문론적, 통사론적 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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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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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bc / 8월 7 2015 6:52 오전

    요한복음 10장 35절의 “신” 또한 데오스를 사용하였는데 그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좋아요

    • Sanghwan A. Lee / 8월 7 2015 9:16 오전

      요 10:35은 36절과 함께 봐야 하고, 시편 82:6에 사용된 엘로힘의 언어학적 쓰임새를 알아야 합니다.

      (1) 요 10:35는 시편 82:1-2, 6-8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구절입니다. 언급한 시편을 번역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로힘 사이에서 심판하신다
      너희는 얼마나 공의롭지 못하게 심판할 것인가?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엘로힘이라, 너희는 모두 가장 높으신 이의 아들들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사람처럼 죽을 것이며 왕자들 중에 하나처럼 넘어지리라.
      엘로힘이여 일어나소서 그리고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당신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보시다시피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과 사람, 혹은 천사들을 다 나타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용한 구절 넘어에서 보면 엘로힘은 (1) 하나님, (2) 재판장, (3) 천사, (4) 사람들, (5) 우상들 등을 지칭하기 위해서 쓰였는데, 정확한 용도는 문법과 문맥에서 나타납니다. (예컨대 엘로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지칭할 때는 복수형임에도 불구하고 단수의 술부를 받습니다. 반면에 다른 존재들을 가르킬 때는 이런 문법 구조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에 있는 엘로힘에 관한 글을 찾아 읽어주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는 구절을 예수님께서 요 10:35에 인용되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 요 10:35-36으로 가보지요.

      (2)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보시다시피 예수님께서 A와 B를 비교하시면서 설명하시는 구조가 나타납니다. 이런 구조는 유대인 서기관들이 즐겨 사용하던 קל וחומר(가벼운 것에서부터 무거운 것으로)라 불리는 성서해석방법 입니다. 이런 성서해석방법은 유대인에게 있는 일곱 개의 방법론 중 하나로 덜 중요한 것들을 예로들어 더 중요한 것의 포인트를 나타내는 방식이지요 (가장 좋은 예는 마 6:30이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는 이런 구조에다가 히브리어 시편 82편에 있는 엘로힘을 언어유희로 사용하사 상대방의 논리를 침몰 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공의롭지 못하게 심판하는 악한 자들도 엘로힘이거늘 선한 일을 하는 의인인 예수는 얼마나 더 엘로힘이겠느냐? 만약 너희 모든 자들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들이라면 하나님의 아들인 나는 얼마나 더 높겠느냐?”

      제가 위에 엘로힘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말씀드렸지요? 즉, 예수님께서는 히브리어 시편을 근간으로 언어 유희를 통해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일격에 잠재우신 것입니다.

      (4) 끝으로 요 10:35를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εἰ가 들어간 조건적 부사절임을 알 수 있습니다: εἰ ἐκεινους εἰπεν θεους. 이럴경우 36절의 “너희가 … 하느냐 (ὑμεις λεγετε)”에 강세가 더 강하게 주어집니다. קל וחומר을 사용하시되 아주 강한 의미로 사용하신 것이지요.

      좋아요

  2. abc / 8월 10 2015 6:01 오전

    답변감사합니다.
    궁금한것이 또 있는데 요한계시록의 일곱영이 무엇인가요?

    좋아요

    • Sanghwan A. Lee / 8월 11 2015 6:28 오전

      정확하게 “~은 이것이다”는 구절이 없기 때문에 세 개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 째, 성령님이라는 견해입니다. 아시다시피 성경, 특히 계시록은 숫자 7을 완전수로 사용합니다. 이럴경우 “일곱 영”은 완전한 영인 성령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요.

      둘 째, 하나님의 일곱 천사로 볼 수 있습니다. 계시록 4:6–9; 5:6–14; 19:4–5을 참고해 주세요.

      셋 째, 이사야 11:2에 근거하여 (1) 여호와의 영, (2) 지혜의 영, (3) 총명의 영, (4) 모략의 영, (5) 재능의 영, (6) 지식의 영, (7)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럴경우 일곱 영은 서로 다른 영이 아니라 한 영을 다른 표현으로 묘사하는 것이지요.

      저는 1번 해석을 취합니다.

      좋아요

  3. 김용락 / 2월 23 2016 4:28 오전

    글 잘보았습니다. 평상시 말씀에 늘 갈하여 찾게된 또 하나의 샘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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