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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2018 / Sanghwan A. Lee

표절자 마태?

들어가며: 본글은 Christian Origins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Early Jesus Movement (ed. Stanley E. Porter and Andrew W. Pitts IV; TENTS 12; Leiden: Brill, 2018) 실린 E. Randolph Richards “Was Matthew a Plagiarist? Plagiarism in Greco-Roman Antiquity”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써졌습니다. 소개의 이유는 (1) 2018년에 읽은 글들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고, (2) 진리를 탐구하는 신학도들에게 도움이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입니다. 본글에 사용된 모든 정보는 Richards “Was Matthew a Plagiarist?”에서 나왔고, 굵은 폰트는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제가 요약하여 정리한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즐독하세요!

Christian Origins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Early Jesus Movement.jpg

고대의 표절: E. Randolph Richards고대에 표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학계의 암묵적 동의를 Bart D. Ehrman 2012 출판서적, Forgery and Counterforgery: The Use of Literary Deceit in Early Christian Polemic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들어 반박합니다 (p. 101, pp. 112–119). 그리고 Ehrman 제시하지 않았던 다른 예들을 제시하며 고대에도 표절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는 Ehrman 주장을 지지하지요 (pp. 119–122).

마태복음에 사용된 마가복음: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내용 90% 마태복음에 나타난다는 학계의 정설을 부각시킨 Richards 복음서의 교집합(마태복음에 사용된 마가복음의 90% – “사용된이라는 표현을 이유는 마가우선설을 따르는 저의 신학적 사고가 반영된 것임을 밝혀드립니다)에는 단지단어문장이라는 원소들뿐 아니라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라는 원소까지 포함되었음을 지목합니다 (p. 101). Evan Powell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문장으로 일축합니다: “[T]he entire text of Mark is copied almost without change by Matthew, with several small exceptions” (Richards, “Was Matthew a Plagiarist?,” 126에서 재인용).

마태와 표절: 여기까지 사유의 흐름을 몰고온 Richards 마가우선설을 따르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1.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했다.
  2. 마태가 후에 복음서를 기록했다.
  3.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내용의 90% 마태복음에 등장한다.
  4. 복음서의 교집합 속에는단어,” “문장,” “이야기라는 원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5. 마태는 마가를 표절한 것인가?

저는 (5) 질문이 합당하고 정당하다고 생각됩니다. Ehrman Forgery and Counterforgery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1)~(4) 내용들은 고대인들의 관점으로 판단하더라도 마태복음을 표절문서로 분류시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마가우선설을 따르는 Richards 다음과 같이 동일한 판단을 내리지요: “Matthew plagiarizes Mark in that he takes Markan material and presents it as his own” (p. 126; cf. 127). 정말 마태가 마가를 표절한 것이라면 마태복음의 도덕적 질은 “ wrong” “thievery” 되고 (p. 109), 저자인 마태는 그레코로만 시대의 영욕문화에 따라 마가의 영광을 훔친 “theif” 것입니다 (p. 111, pp. 124–126).

표절 심의에 걸리지 않은 마태: 하지만 마태복음은 표절이라는 개념이 있었던 초대교회의 잣대를 당당히 통과하여 복음서의 서두에 위치하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있었을까요? Ehrman 관점(Forgery and Counterforgery, 55) 발전시킨 Richards 이유를 이렇게 제시합니다: “The desire to publish anonymously was to avoid any claims to praise and glory, and thus to avoid charges of plagiarism, of stealing honor, and not some vague theological motive like giving Jesus the credit as author” (p. 132). 마태가 표절 심의에 걸리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저자라고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 학계의 정설처럼 굳어버린겸손을 위한 익명 저자설 아니라표절을 피하기 위한 익명 저자설 주장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마태복음의 제목처럼 사용되는 “κατὰ Ματθαῖον”는 마태복음 원문에는 없었을 것이 거의 분명합니다. 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반에 복음서들을 서로 구분하기 위해서 붙여졌겠지요. 그러므로 후대에 타인에 의해 붙여진 “κατὰ Ματθαῖον”을 근거로 마태의 표절설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끝으로: 저는 Richards 주장이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레코로만 시대의 영욕문화의 관점으로 보면 더욱 그러하지요. Richards 글이 출판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peer review criticism 제시한 학자들이 없지만 Thesis 도발적인 만큼 서서히 평가글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Richards 주장이 학계의 반응을 어떻게 불러 일으킬지 무척 기다려 지네요. 이제 세 가지 생각만 나누고 글을 맺습니다.

  1. Q 소스나 M, L 소스 등을 연구하는 신학도들에게는 새로운 방법론이 소개될 있는 2019년이 수도 있겠지요?
  2.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사도 바울 저자설을 취하는 신학도들에게는 Self-Plagiarism으로 석사 논문 정도를 있는 기회가  수도 있겠네요!
  3. 신학도 여러분, 표절은 도둑질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맙시다! 🙂

Merry Late Christmas & Happy New Year!

 

부록: Brill에서 제공하는 사진파일 첨부: E. Randolph Richards “Was Matthew a Plagiarist? Plagiarism in Greco-Roman Antiquity”의 첫 두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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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2018 / Sanghwan A. Lee

2019년도 결의안

맞이하는 2019년에 꼭 이루기로 다짐한 다섯 결의안들입니다. 블로그 팔로워 분들의 결의안은 무엇인가요?

  1. 신약에 사용된 모든 헬라어 단어 외우기 (5,437 개)
  2. GNT 두 번 번역하기 (i. NA28, ii. THGNT)
  3. 저널 세 개 투고하기 (i. 코이네 문법과 링귀스틱 이론의 교차점, ii. 그레코로만 소설과 성서해석, iii. 그레코로만 서신양식과 저자 진본성의 관계)
  4. 논문 리서치 범위 좁히기
  5. 운동 및 살빼기

지금 보니 5번이 가장 힘드네요! 블로그 팔로워 님들, 힘차게 2019년을 맞이하시고 결의안들을 모두 이루시는 새해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12/18/2018 / Sanghwan A. Lee

천국에서 온 문자

모빌 가족
지난 주일, 모빌 가족에게 중요한 문자 하나를 받았다. “노엘” 찬송가에 사용된 “이상한”이라는 문구에 파라색 동그라미가 칠해져 있고 그 아래 내 이름 “이상환”이 적혀져 있다. 워낙 재미있으시고 재치있으신 분이시라서 유모스러운 문자를 보내신 줄 알았다. (참고로 몇 년 전에 아무개 교회에 설교 초빙을 받아 갔더니 주보에 “설교자: 이상한 목사”라고 적혀 있었다. ㅋ) 하지만 다음에 온 문자를 보니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목사님은 우리의 별이에요.”
 
별이 동방의 박사들을 예수님께 인도했듯이
이상환 목사는 모빌 가족들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렇다. 목사는 예수님의 양떼들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한다. 교회의 성도들은 담임 목사의 양무리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무리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먹여야 한다. 예수님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야 한다. 양들의 시선이 오직 예수님께 고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내게 이러한 목회론을 가르쳐 주신 故 이병균 목사님의 목소리가 故 이병균 목사님과 외모가 무척이나 닮은 모빌 가족의 문자로부터 메아리쳐 들려온다.
 
혹시 천국에서 故 이병균 목사님으로부터 온 문자일까? 
10/21/2018 / Sanghwan A. Lee

주권의 하나님, 예수: 이원론에 반하여

10/15/2018 / Sanghwan A. Lee

재키(Jacqueline)의 고구마

오늘 재키 누님께 호출을 받아 댁에 방문했다. 텃밭에 심겨진 고구마를 함께 캐자는 이유였다. 아이들과 함께 고구마를 캐며 시간을 보내던 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에 보이는 수 많은 고구마들이 오직 하나의 고구마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텃밭에 심은 것은 오직 하나의 고구마였는데, 그 고구마가 저렇게 많은 자녀를 낳았다는 말이다.

고구마.jpg

큰 충격과 동시에 어제 번역했던 골로새서 1.6이 떠올랐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듣고 참으로 깨달은 그 때부터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이 복음은 세상에서 열매를 맺고 있으며 또한 자라나고 있습니다.” ~개인번역

본문에 있는στν καρποφορούμενον κα αξανόμενον “[ 복음은 세상에서] 열매를 맺고 있으며 또한 자라나고 있습니다 번역했다. 우회적 구조를 일반 동사의 구조와 차별하여 강조적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유? (코이네 헬라어에서 모든 우회적 구조를 강조적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반드시 개인어와 저자의 신텍스를 고려한 후 판단해야 한다.) 골로새서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면 우회적 구조가 아주 희귀하게 나타난다. 움직임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부분은 거의 일반동사나 분사로 묘사됐을 뿐이다. 그러므로 서신에서 겨우 번만 나타나는현재형 동사 + 현재형 분사 근접거리 우회적 구조는 강조적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어떤 강조점일까? 첫째, ‘복음이 세상에서 열매를 맺고 있는 이라는 생명성지금까지 자라나고 있는 이라는 역동성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생명성과 역동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씨앗이었다. 씨앗은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세상의 풍파를 뚫고 역동한다. 결과 세상에 심겨진 복음은 오늘도열매를 맺고 있으며 또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예부터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말이다. 복음은 정녕 하나님의 능력이자 자존심인게다.

잠시 모습을 돌이켜 본다. 과연 안의 복음은 어떠한가? 내 속에 들어있는 복음이 참이라면 삶을 통해 열매를 맺고 자라나는 것이 옳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렇다면 삶은 그러한가? 입술의 말과 행동을 통해 예수님의 향기가 증거되고 있는가?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점점 변화되고 있는가? 반드시 깊이 숙고해봐야 일임에 틀림없다.

인생에 영향력을 끼친 구고마가 있다. 첫째, 권혁수의 호박고구마. 정말 눈물이 나고 배가 아프도록 웃겼기 때문. 둘째, 재키 누님의 생명성과 역동성이 풍부한 고구마. 큰 충격과 더불어 깊은 깨달음을 줬기 때문. 짧고 짧았던 오늘 훌륭한 레슨을 배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