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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2017 / Sanghwan A. Lee

It is official now! I am a graduate of Dallas Theological Seminary! Yay!

 

졸업한지 이주 정도가 지났지만 반드시 인사를 드려야할 분들께 인사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졸업장을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오늘 졸업장을 받았기 때문에 이자리를 빌어 공식적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Diploma.png

존경하는 이인기 장로님, 정말 감사합니다. 달라스 신학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졸업하는 마지막 날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장로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결코 오늘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장로님께서 전해주신 큰 은혜로 말미암아 예전부터 오고싶어했던 학교에 와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마음껏요! 장로님과 장로님을 통해 저를 위로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주어진 모든 과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Highest Honors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장로님, 정말 감사합니다!

보고싶은 박재현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늘 앞에서 저를 끌어주시고, 뒤에서 밀어주시며, 옆에서 그늘이 되어주신 형님이 안계셨더라면 오늘은 결코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형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감내하신 희생, 그리고 늘 보태주셨던 격려와 위로 덕분에 쉽지 않은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제 친구이자, 선배이자, 인생의 동역자이신 형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정유경 마눌님, 고마워요! 내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당신의 희생이 없었다면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꺼에요. 앞으로 몇년 더 남은 공부, 끝까지 잘 도와주세요~ ㅋㅋ 열심히 공부해서 언이와 슬이에게 자랑스런 아빠가 될 수 있도록 할께요~

끝으로 아빠, 엄마, 주환아! “너같은 돌머리가 관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염려하셨지요? 저 잘~ 살아남았습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조금 더 남았지만 지금처럼 기도해주시는 가족이 있다면 잘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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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2017 / Sanghwan A. Lee

기도부탁

며칠동안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잤습니다. 오늘 저녁에 있었던 왈라스 교수님과의 면담 때문이었습니다. 무척 존경하고 좋아하는 교수님을 그분의 댁에서 1:1 만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논한다는 사실이 무척 버겁게 다가왔던가 봅니다. 여하튼 두시간 삼십분 간의 만남을 끝내고 집에 와서 무척 홀가분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거운 기분으로 본글을 씁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왈라스 교수님의 추천으로 이번에 논문—A Defense of the Petrine Authorship of 1 Peter from Linguistic Evidence—이 (1)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2) Novum Testamentum, (3)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저널 형식으로 보내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해야 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논문에서 풍기는 이반젤리컬한 관점을 지워야 합니다. 오직 프라이머리 소스(i.e., 문법, 그레코로만 시대의 링귀스틱 자료, 유니버설한 언어학 이론)로만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25,500 단어로 구성된 논문을 7,500 단어로 압축해야 합니다. 사실 25,500 단어도 압축하고 압축하여 나온 개수인데 어디를 압축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셋째, 독일어와 프랑스어 소스를 첨가해야 합니다. 부분은 논문에 첨가했다가 뺐던 소스를 다시 넣으면 되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을 합니다.

넷째, 캐런 좁스, 스탠리 포터, 마크 챈시, 그레그 포베스, 토마스 슈라이너, 마크 듀비스, 램지 마이클스 등에게 논문이 보내지게 됩니다. 전문가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논문에 사용한 논증에 헛점이 없는지 재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과정이 두렵게 느껴지지만 왈라스 교수님께서 처음부터 다시 슈퍼바이즈 해주신다고 하니 한시름 놓입니다. 그러나 겨우 한시름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블로그 형제, 자매 여러분, 모든 과정이 진행될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이반젤리컬 관점이 아닌 프라이머리 소스를 통해서도 베드로의 베드로서신 저자설을 변증할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이제 한동안 글도 블로그에 올릴 수 없을 합니다. 조만간 다시 뵙기를 소망하며 재차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08/29/2017 / Sanghwan A. Lee

폴리캅의 고백

서론: Τί γὰρ κακόν ἐστιν εἰπεῖν, Κύριος Καῖσαρ, καὶ ἐπιθῦσαι, καὶ τὰ τούτοις ἀκόλουθα, καὶ διασώζεσθαι; “시저가 ()시라 말한 그분께 향을 올려 드리고 당신의 생명을 보존한다고 해서 손해볼 것은 없지 않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시라 고백하는 폴리캅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이방원의 하여가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있겠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년까지 누리리라.”

문제제기: 질문을 받은 폴리캅.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부분이 한군데 있다. 질문자가 사용한 διασώζεσθαι 태(態)이다. διασώζεσθαι διασῴζω(‘구원하다’) 현재부정사로 중간태 혹은 수동태일 있다. 문맥속에서 부정사의 태를 식별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두개의 태가 자연스럽게 들어맞는다. 중간태로 취해도 해석이 가능하고, 수동태로 취해도 해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중간태로 취할 경우 자신을 구원하라 되고 수동태로 취할 경우구원을 받으라 된다. 사실 질문자가 어떤 의미로 διασώζεσθαι 사용했는지, 게다가 폴리캅은 어떤 의미로 διασώζεσθαι 받아 들였는지 우리는 없다. 질문자가 수동태로 사용했어도 폴리캅은 중간태로 이해했을 있고, 질문자가 중간태로 사용했어도 폴리캅은 수동태로 이해했을 있다. 그러나 관심은 질문자의 의도가 아니라 폴리캅이 어떤 의미로 διασώζεσθαι 이해했는지에 있다.

중간태: 만약 중간태로 이해했을 경우시저에게 예배를 드림으로 스스로 목숨을 구원하라 의미로 해석이 된다. 폴리캅의 목숨은 폴리캅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의미가 된다. 배교 행위가 자신의 생명을 조금 연장시킬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순간 폴리캅은 베드로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예수님을 번이나 부인함으로 자신의 생명을 조금 연장시켰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말이다. 비록 배교로 얻은 연장된 삶을 사는 동안 놀라운 사역을 이루어 냈지만,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리는 그 순간까지 배교로 인해 찾아온 아픔을 지우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비록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고치시고 싸매셨지만 그분을 번이나 부인했다는 사실은 베드로의 마음에서 순간도 떠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베드로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폴리캅. 그의 삶을 근거로 추정하건데 그가 διασώζεσθαι 중간태로 이해했다손 치더라고 라고 답했을 가능성은 무척 적게 느껴진다.

수동태: διασώζεσθαι 수동태로 이해했을 경우시저에게 예배를 드림으로 시저에 의해 목숨을 건짐받으라 의미로 해석이 된다. 이럴경우 폴리캅의 목숨은 시저에게 달려있게 된다. 배교 행위가 시저로 하여금 폴리캅의 생명을 연장시킬 있는 수단이 된다는 의미다. 그순간 폴리캅은 마태복음 10:28 떠올렸을 것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시저는 폴리캅의 목숨을 능히 멸할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까지 멸할 수는 없었다. 그의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실 있는 분은 오직 ,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 뿐임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역시 그의 삶을 근거로 추정하건데 그가 διασώζεσθαι 수동태로 이해했을 경우에도라고 답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폴리캅의 선택: 폴리캅이 διασώζεσθαι 중간태로 이해했는지 수동태로 이해했는지 우리는 없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어떤 경우에서도아니요 것임을 짐작 있다. 우리의 예측대로 그는 최후의 순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86년간 예수님 섬겨왔습니다. 그동안 그분께서는  번도 내게 해를 끼치신 일이 없었지요. 헌데 내가 어찌 나의 왕이시요 나의 구세주이신 분을 어찌 부인할 있겠습니까?” 폴리캅의 표현을 한국적으로 나타낸다면 다음과 겠다: “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처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예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그는 그 고백을 끝으로 예수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

Polycarp.jpg

우리의 자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폴리캅과 같은 믿음이 있나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생명까지 던질 수 있는 믿음이 있나요? 본글의 결론은 여러분께서 오늘의 삶을 통해 직접 써보세요. 샬롬!

08/29/2017 / Sanghwan A. Lee

잘 훈련받지 못한 여증인들과 나눴던 대화 (My Conversations with Two Jehovah’s Witnesses)

천안대전행 기차에서

전(前) 대화 생략…

: 계시록 22:13 보면 예수님께서알파와 오메가라는 구절이 있어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존재하시는, 시작과 끝이 없으신 영원한 하나님이라는 의미지요.

여증인: 아니에요. “알파와 오메가 헬라어의 글자와 마지막 글자로 처음과 끝을 의미해요. , 예수는 시작과 끝이 있는 존재라는 의미지요.

: , 그래요? 계시록 21:6에는 성부 하나님께서도알파와 오메가라고 나오던데, 그럼 성부 하나님께서도 시작과 끝이 있는 존재라는 의미인가요?

여증인:

 

미국의 커피숍에서

전(前) 대화 생략…

: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요.

여증인: 아니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지하나님이라고는 안했잖아요. , 예수는하나님의 아들이지하나님 아니에요.

: , 그래요?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인자, 사람의 아들이라고도 하던데요? 그러면 예수님은 사람도 아니겠네요?

여증인:

08/24/2017 / Sanghwan A. Lee

쓰레기통 옆에 버려진 성경

오늘 시립도서관에 가는 , 길가에 버려진 훼손된 가죽 성경 권을 봤다. 안을 열어보니 깨끗했다. 누가 실수로 떨어뜨린 것은 아닌가 생각했지만 성경이 발견된 위치가 쓰레기 옆이고, 표지가 훼손됐기 때문에 누군가가 버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가죽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버려진 성경 보고 있노라니 하나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최고의 가죽 성경으로 알려진 시내산 사본과 믿음의 선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내산 사본(Codex Sinaiticus) 가치는 가장 수식어로도 표현할 없을 만큼 값지다. “이른 사본이 없기 때문에 신약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없다 주장한 페르디난드 바우어(F. C. Bauer) 주장으로부터 기독교를 변증하기 원했던 콘스탄틴 틴셴도르프(Constantine Tintendorf) 우여곡절 끝에 발견한 사본. 27권의 신약 성경을 모두 담고있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기 때문에가장 이른 성경이란 별명을 획득한 사본. 대문자 사본 중에 가장 오래된 이른 시기의 사본임과 동시에 최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사본. 원본은 730 정도나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대한 사본. 개의 칼럼으로 나누어져 있는 유일무이한 사본이기에 예배의 목적으로 신약의 모든 성경이 사용됐음을 증거하는 사본. 수도원의 화덕 불에 태워질 찰라 건짐받았다는 전설까지 붙어있는 사본. 시내산 사본에 얽혀있는 무수한 이야기들은 신약 성경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감동의 물결로 다가온다.

시내산 사본.jpg

그러나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시내산 사본을 만들기 위해서 희생 당한 양이 무려 350~400 마리나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에 상상 수도 없는 천문학적 금액이 겨우 책 한권을 만들기 위해 소비됐음을 의미한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시내산 사본은 파피러스에 쓰여진 사본이 아니다. 고대에 가장 귀한 서사재료인 양피지에 쓰여졌다. 양피지는 동물의 가죽 내면을 정성스레 손질하여 만든 서사재료로 최고급 재료에 속한다. 게다가 시내산 사본에 사용된 양피지는 중에서도 최고의 등급인 벨럼(Vellum)—벨럼은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고 손질 등급도 최고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서들을 필사 및 보존하기 위해 사용됐다으로 분류된다. 결과 년하고 백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탁월하게 보존된 모습으로 틴셴도르프의 품 안길 있었던 것이다.

잠시 벨럼을 만들기 위해 천문학적 금액을 기꺼이 사용한 믿음의 선진들과 이를 위해 희생당한 수백마리의 양떼들을 생각해보자. 믿음의 선진들은 성경을 오랫동안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주고자 천문학적 금액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350~400 마리의 양떼들—벨럼으로 만들려다가 훼손된 가죽까지 계산한다면 수백마리가 더해질 수 있다 희생을 당했다이러한 선진들의 노고와 헌신, 그리고 양떼들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손에 가죽으로 덮혀진 최고급 성경이 들려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제는 너무 쉽고 값싸게 구할 있게된 성경. 그래서 때때로 무가치하게 취급되지는 아니한지. 지루하면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통에 버려지지는 아니한지. 잃어버리면 하나 사면 되는 정도로 취급되지는 아니한지. 적은 가격에 너무 쉽게 구할 있기 때문에 성경이 어떻게 우리 손에 들릴 있게 됐는지에 대한 역사적 인식까지 먼지묻은 퇴물처럼 취급되는 하여 마음 켠이 아리다.

하나 나눌 것이 있다. 성경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흘려진 피는 가죽이 벗겨진 동물들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 믿음의 선진들의 피도 한강보다 많이 쏟아졌다. 맥아더 목사가 나눈 그의 일화가 생각난다.

나에게는 희귀한 성경을 수집하는 친구 하나가 있다. 그는 정말 멋진 성경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중에 하나는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소장한 성경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16세기 영국에서 가장 일찍 출판된 성경 중에 있다. 성경은 본래의 주인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친구는 내가 성경을 손에 쥐어 있도록 허락해 주었고, 나는 장씩 조심스레 넘겼다. 책을 넘기는 동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성경에 피가 묻었을까? 유혈(流血) 메리가 영국을 다스릴 때에 개신교도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였다. 군인들은 믿는 자들을 칼로 찔러 피를 쏟게 피에 그들의 성경을 담갔던 것이다나는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 봤다. 본래의 주인이 공부를 많이 했기에 닳은 부분도 있었고, 눈물을 흘렸기에 생긴 얼룩 자국도 있었으며, 자주 봐서 손가락에 의해 해어진 부분도 있었다. 성경은 그가 소장했던 물건 중에서 가장 소중했던 것임을 그의 피가 입증해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손에 성경이 들려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셨고, 마리의 양들도 피를 흘렸으며, 수천명의 믿음의 선진들도 피를 흘렸다. 세상을 주고서도 바꿀 없는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손에 성경이 들려질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성경이 낡으면 새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훼손 됐으면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이런 현상을 비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바꿔지고 교체될 성경이 우리의 손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만큼은 결코 잊지 말자는 뜻이다.

예수님과 믿음의 선진들, 그리고 수백마리의 양들의 피가 흘려졌다는 그 충격적인 사실을 말이다.